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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Tea)와 관련한/1.Tea에 대한

차의 시작 Part.10 / 대만의 차(茶) 역사

by Full_shine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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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차(茶) 역사

 

청나라 말기 시대 대만 항구가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해외 무역이 왕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차가 대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차나무를 재배한 것은 1700년대 후반이었다. 중국에서 차나무를 들여와서 재배를 시작했는데 차 재배에 최적화된 날씨과 지형을 가지고 있던 대만은 강수량이 풍부하고 습한 기후 그리고 산악지역으로 지리적 조건이 좋았던 북부지역을 시작으로 차를 재배했다. 그러나 1820년 다른 재배종을 들여오기 전까지 시험재배 수준으로 생산했다. 제1차 아편전쟁 이후 대만의 담수(淡水, 단수이)와 고웅(高雄, 가오슝) 항구가 개통 되었고 무역 상인인 존 도드는 한 회사에 투자를 촉구해 대만 수도에 차 공장을 설립했다. 1869년 대만의 차를 수출하며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고 다양한 차 묘목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이 대만을 점령하고 차에 관해 많은 투자를 했다. 차 농장 확대와 청심오룡, 청심대유, 대엽오룡, 경지홍심, 4개의 품종을 선발해서 재배를 장려하기도 했으며 차 생산량 극대화를 위해 대만에 적합한 차 품종을 개발했다. 일본의 녹차와는 경쟁을 하지 않기 위해 홍차 재배와 생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의 패망으로 대만은 중국에 반환되고 다시 홍차에서 녹차 생산으로 바뀌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점차 밀리게 되고 일본도 녹차의 자급자족을 하며 대만의 차 수출 입지는 줄어들었고 1980년대 들어서 내수시장 활성화에 주력하게 된다. 녹차 수출 대신 청차(우롱차)생산으로 눈을 돌렸으며 대만 정부 주도로 철저한 품질관리와 품종 개발 및 개량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차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청차의 품질도 높은 반열에 올랐고 양보다 품질에 집중해 생산한 결과로 명품 청차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대만은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은만큼 다양한 취향이 한 데 뒤섞인 차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중국인, 영국인, 일본인 등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형태로 차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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