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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Tea)와 관련한/1.Tea에 대한

차의 시작 Part.7 / 영국의 차(茶) 역사

by Full_shine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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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차(茶) 역사

 

 영국은 차나무를 재배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영국의 차는 동서양의 무역이 활발해지며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신비로운 마실 것으로 시작한다. 17세기 초반 네덜란드는 일본과의 무역 거래를 하며 선박을 이용해 일본 차를 실어왔는데 이 때만 해도 홍차가 아닌 녹차류의 차였다. 그러나 차는 다른 것들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1662년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이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을 하며 인도 뭄바이와 북아프리카 탕헤르 그리고 브라질과 서인도 제도에 대한 자유무역권을 함께 가져와 동인도 회사는 인도 무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동시에 차(茶, tea)와 설탕 그리고 향신료를 가득 채운 선박으로 영국에 도착하고 캐서린 왕비가 피곤함을 달래지 위해 tea를 마시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고 한다. 캐서린 왕비는 궁에서도 티 모임을 자주 열어 즐겼으며 티를 우리는 값비싼 중국 다기들에 대한 영국 귀족들의 관심이 늘어갔다고 한다. 1685년 동인도회사 본사는 양질의 신선한 차 (당시 주류는 '녹차')를 매년 보내달라는 편지를 마드라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차 주문의 90%가 녹차 수입량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역이 뚫리고 캐서린 왕비의 티 모임으로 인해 많은 귀족들이 차(茶, tea)를 즐기게 되었으며 이후 인도에 차나무를 생산하고 안정적인 차 공급이 원활해 지면서부터는 서민들에게까지 차가 전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영국의 차는 포르투갈 공주였던 캐서린이 왕비로 오며 진정한 '차 문화(Tea time)'이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민들에게 차 문화가 전파되기 까지는 일본에서의 차 수입이 막히자 중국을 통해 수입하게 되고 대금을 은으로 결제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대량 유출되었으며, 유출을 막기 위해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으로 수출하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의 잊고싶은 역사인 아편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 이후 역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에 차나무를 심고 차를 생산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값 싼 차들이 들어오면서 서민들까지 즐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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