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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Tea)와 관련한/1.Tea에 대한

차의 시작 Part.3 / 한국의 차(茶) 역사

by Full_shine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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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차(茶) 역사

 

 한국의 차 역사는 7세기 전반 신라 선덕여왕 때로 올라가서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차 문화를 들여왔으며, 차의 성행은 흥덕왕때 당나라에서 차의 종자를 가져와서 지리산에 심은 이후라고 전해진다. 물론 삼국시대에 고구려 승려들에 의해 들어왔다는 설과 수로왕의 부인인 허씨가 아유타국(현재 인도)에서 씨를 들고 왔다는 설도 있으나 사료가 불충분하다. 확실한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신라 흥덕왕때 당 문종에게 선물 받은 차나무 씨앗을 지리산에 심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한국의 차 역사 시작이라고 한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이유로 지리산 중심인 영남과 호남 지방이 한국 차의 본고장이 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일부 승려와 화랑도들이 차를 마셨고 차를 공양했다는 여러 설화와 기록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승려사회에서 음다의 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 사원 등에 차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고려 궁중의 주요한 음식물 가운데 하나였다. 궁중의 차를 관리하는 '다방(茶房)'이라는 관부가 있었고, 귀족들도 차를 들겨 송나라 상인으로부터 중국 차를 구입하고 좋은 다구(茶具)를 들여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차와 불교가 인연이 깊었기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숭유억불정책의 영향으로 승려층의 권력계급이 사라지면서 차문화의 주도권이 양반가와 정부로 넘어갔으며 검약을 추구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사치품이었던 차는 일상에서 사라졌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16세기경에는 차에 대한 이해가 적었고 사원을 중심으로 명맥만 유지되어 가고 있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차는 다시 유행하게 된다. 여러 문인들이 차를 즐기기 시작했고 초의는 '동다송'을 짓고 차를 재배하는 등의 이론들을 정리하며 우리나라의 다도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로 차를 생산하는 노력이 거의 없었고, 1883년부터 차의 재배를 관장하고 그 이후 청나라에서 차나무 모종을 수입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일본인들에 의해 차가 생산되고 보급되었으며 한국 차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방편이었으며 일본인들에 의해서 보성다원, 소천다원 등이 조성되었다.

 

 한국의 녹차밭은 운남 소엽종이 토착화한 재래종 + 일본 시즈오카에서 유래한 대엽종 야부기다종이 재배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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