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Coffee)의 역사
커피가 세계로 어떻게 뻗어나가게 되었는지 대략적으로 알아봤다. 커피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세계 최초의 카페가 이스탄불에서 생겨났다는 것도 이제 알았다. 뒤 이어 문전성시를 이루던 당시의 커피하우스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현재 '카페(Cafe)'라고 불리는 곳의 시초인 커피하우스는 역사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아주 막강한 정보들이 오갔던 곳이라고 한다.
3. 유럽에서의 커피하우스의 유행 = 오늘날 카페(Cafe) 시작
커피하우스가 탄생되기 전 그들이 주로 모이던 곳은 선술집이었다. 알코올. 그 막강한 중독성으로 인해 과도한 음주가 일상이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 질병과 타인과의 타툼이 만연했다. 그 가운데 부상한 커피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각성 효과는 매우 뛰어났으니 얼마나 신세계였나 싶다. 1629년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650년엔 영국 런던에서 1672년엔 프랑스 파리에서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건전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술집과는 다르게 건전한 공간이었던 커피하우스는 런던의 신사들과 파리의 부르주아들에게 모임의 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온갖 가십과 시사, 정치, 철학 혹은 흥미로운 스캔들이나 그들의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이용했다. 특히 민주적인 특성이 커피하우스에 영향을 끼쳤는데,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페니 대학(Penny Universities)'이라고 불리며 1 페니의 값싼 금액으로 커피를 마시며 온갖 정보와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는 곳으로 누구나 이곳에서 토론을 하며 여러 논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으로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 정치인'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상상이 될 정도다. 물론, 저 단어가 좋은 뉘앙스의 말은 아니고 1 penny의 커피를 사서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진을 치고 앉아 비현실적인 정치적 견해들을 입으로만 떠들어 대며 소문만 무성히 퍼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어찌 되었건 커피하우스는 근현대 유럽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학문이 탄생한 곳이라는 의미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다. 영국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이라고 불리는 과학자들의 모임 '왕립학회'도 바로 이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이 왕립학회의 초기 회원이었던 '아이작 뉴턴'과 '로버트 보일', '로버트 훅' 등이 이곳에 모여 밤낮으로 토론한 내용은 지금의 근대 과학의 토대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영국 대형 보험사 '로이드'의 효시도 바로 이 커피하우스다. '로이드'라는 간판을 달고 있던 커피하우스에는 배를 타는 선원들과 무역업을 일삼았던 상인들 그리고 해운업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곳이 보험사 로이드의 시초이다. 항해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최신 정보들은 로이드 커피하우스에서 공유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로이드가 발행한 '로이드의 뉴스'를 보며 새로운 정보를 접했다. 이곳의 커피하우스 고객들은 상업과 선박업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보험회사 대리인 그룹들까지 눈에 띄게 많아졌고 18세기가 지나면서 커피하우스의 본래 기능 대신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런던 로이드(Lloyd's of London)'로 성장했다. 보험회사 외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바로 이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회사의 발전이 되는 공간일뿐 아니라 '영국 소설'이라는 문학의 새로운 장르 탄생 배경도 역시나 커피하우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커피하우스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며 왕실이나 그들의 대변인의 말이 아닌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과 경험 등 실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 '존 드라이든', '스위프트, '에디슨' 등의 문인들은 물론이고 재기 있는 잡담을 즐기는 사람들도 윌과 바튼의 커피하우스를 주로 찾았다고 한다. 출신과 나이는 전부 다르지만 '문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영국 문학의 주역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러한 발전소 역할을 톡톡히 해낸 모임의 장 커피하우스는 1700년경에 런던에 수천 개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며 문전성시를 이뤘고 그 시기에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커피숍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해 뉴욕에서는 아침에 맥주대신 커피가 더 잘 팔릴 정도로 선호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류사회에 있는 신사들이 즐기는 고급 회원제 클럽 문화 (Gentlemen's Club)이 생겨나면서 영국의 카페 문화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가 토론의 장이었다면 파리에서의 커피하우스는 혁명이 시작 된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커피 그 자체로는 메흐메트 4세의 사절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4세를 접견했을 때, 투르크식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 계기로 프랑스 권력층에겐 커피만을 담당하는 하인을 두는 것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프랑스 권력층과는 별개로 커피가 점차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파리의 커피하우스는 '볼테르' 그리고 '장 자크 루소' 드으이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아지트였으며, 특히 볼테르가 즐겨 찾았던 커피하우스인 '르 프로코프'는 1686년 문을 연 뒤로 지금까지도 파리에서 영업 중으로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이후에도 '카페 레 되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알베르 카뮈', '파블로 피카소', '장 폴 사르트르'같은 작가와 미술가, 지식인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위에 언급된 커피하우스들은 아직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영국의 높으신 분들의 폐쇄적인 커피하우스 문화와 달리 파리의 커피하우스는 평등과 공화주의를 대변하는 공간이었고 이곳에서 프랑스 민중들은 치열하게 토론을 하며 개혁의식을 키워간 부르주아 계급들의 성장은 프랑스혁명으로 발전하기도 했으며 프랑스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도 숱하게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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